온종일 진상 민원을 넣는 학부모로부터 시달리다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넷플릭스를 켠 선생님을 상상해보자. 화면 속 나화진이 진상 학부모를 응징하는 순간,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교실에서 느꼈던 무력감, 민원 앞에서 참아야 했던 모멸감,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은 통쾌함이었을 것이다. 그 통쾌함이 큰 만큼 우리 교실이 무너졌고 교실을 지켜온 사람들이 지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잠깐 멈춰야 한다. 드라마는 선한 학생과 악한 학생, 천사 같은 교사와 악마 같은 학부모로 세상을 나눈다. 선과 악이 선명할수록 응징의 쾌감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악당이 지목되는 순간, 정작 우리가 진정코 물어야 할 것들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교실은 그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거울일 뿐인데, 우리는 거울에 등장한 얼굴에 손가락질하며 통쾌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의 기본이 되는 사회구조는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 초압축 성장을 거치며 온몸에 하나의 명령을 새겼다. 이겨야 산다. 서울로 가야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야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 학벌이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구조 속에서 학교는 서서히 배움터가 아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 계획이 아직 본격 착공 단계에 이르지 못한 가운데, 정치권과 정부 안팎에서 호남권 반도체 투자론이 급부상하면서 국가 산업정책의 신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근 대통령과 주요 대기업 총수 회동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수도권 반도체 투자 가능성이 잇따라 거론되고 있다. 호남권과 충청권이 새 투자 후보지로 언급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도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의 반대 목소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시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최고위 관계자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를 근거로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내 팹 6기 건설 계획은 변함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서도 용인 국가산단을 흔드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시장의 대응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로 보기 어렵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2023년 정부가 발표한 국가전략사업이다. 경기 용인시 이동·남사읍 일대에 삼성전자가 대규모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기흥·화성·평택·이천으로 이어지는 기존 반도체 벨트와 연결해 세계적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용인 국가산단은 용인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논술의 본질을 오해한 채 잘못된 방향으로 시간을 쓰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입시 현장 전문가들은 “논술은 유려한 문장력을 겨루는 글쓰기 대회가 아니라, 주어진 제시문을 정확하게 읽고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독해력 평가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입시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문장력을 키우면 논술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반대로 독서량이 많고 어휘력이 풍부한 학생의 학부모는 논술 전형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주요 대학 논술의 실제 채점 기준을 살펴보면 이러한 통념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논술 답안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표현이나 풍부한 배경지식이 아니다. 출제자가 제시한 텍스트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가 핵심이다. 잘 쓴 글보다 정확히 읽어낸 글이 합격에 가까운 셈이다. ◇ 독서량이 많아도 실패하는 이유 논술 지도 현장에서는 독서량이 많은 상위권 학생이 실전 논술에서 기대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낯선 제시문을 마주했을 때 텍스트 자체의 논리를 분석하기보다, 자신이 이
JTBC와 중앙그룹 계열사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은 회사채 투자자와 외주 제작사뿐 아니라 방송 작가, 외주 스태프, 메가박스 위탁점·가맹점주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정관리 앞에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고료, 용역대금, 정산금은 원칙적으로 회생채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의 실질, 근로자성 인정 여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해당 여부에 따라 대응 방법은 달라진다. ◇ 세 번째 피해자: 방송 작가·외주 스태프 등 프리랜서 프리랜서 방송 작가, 외주 스태프 등의 고료·용역대금 채권은 원칙적으로 회생채권에 해당한다. 여기에 한 가지 결정적인 변수는 근로자성 인정 여부다. ◇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 공익채권·최우선변제·체당금 JTBC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퇴직금은 공익채권으로 보호된다. 특히 최종 3개월분 임금과 최종 3년간의 퇴직금은 담보 채권자보다도 우선하여 변제받는 최우선변제권이 인정된다. 나아가 근로복지공단에 대지급금, 이른바 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다. 사업주가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은 경우, 퇴직한 근로자는 미지급 임금·퇴직금 중 일정 범위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대신 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평가할 때 나이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능력과 비전, 책임감보다 출생연도가 먼저 거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군가 중요한 자리에 도전하면 가장 먼저 나이를 묻는다. 나이가 많으면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하고, 젊으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결국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가 되는 것이 나이다. 어느 순간 나이는 사람의 가능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가장 손쉬운 잣대가 되어버렸다. 물론 나이는 의미가 있다. 살아온 세월은 경험이 되고, 경험은 지혜와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젊음은 새로운 도전정신과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제공한다. 세대마다 고유한 강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나이를 참고자료가 아닌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데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거나, 젊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의 진정한 가치와 역량을 놓치게 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평균수명은 크게 늘어났고, 70대와 80대는 물론 90대에도 활발하게 사회활동과 봉사활동,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스피 9,000 시대, 반도체 수출 호황과 증시 활황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역대급 초과 세수가 예상된다는데, 민선 9기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가 마주한 민선 8기 도정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누적 채무 7조 원이라는 거대한 불명예와 함께, 방만한 재정 운영의 여파로 예정된 핵심 사업마저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비상경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의 초과 세수와는 반대로 경기도의 세수 결손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취득세 감소라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경기도의 재정이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데에는 전임 지방정부의 정교하지 못한 재정 운용과 퍼주기 행정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이에 다시 2025년 경기도의 최약자들이 예산 삭감으로 고통받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기억이 소환된다. 그러니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재정 수치의 위기 그 자체가 아니다.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명분 아래 진행될 '칼날의 방향'이다. 재정 정상화라는 엄격한 잣대가 가리키는 곳이 또다시 사회적 최약자들의 삶의 보루라면, 그것은 행정의 실패를 넘어 공동체의 도덕적 파산과 다름없다. 이미 우리는 지난 2025년, 경기도가 재정 부족을 이유
2026 북중미 FIFA 월드컵 일본과 튀니지의 조별리그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1000번째 경기였다. 축구사에 남을 이정표였다. 그런데 그 역사적 장면 한편에 욱일기가 등장했다. 경기장 관중석에서 일본 응원단 일부가 욱일기를 펼친 장면이 중계 화면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일본 국기를 흔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왜 하필 욱일기였느냐다. 욱일기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조선 침탈,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아시아 각국의 점령과 수탈의 기억 속에서 이 깃발은 피해국 국민에게 여전히 상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유럽에서 나치 하켄크로이츠가 단순한 문양이 아니듯, 아시아에서 욱일기 역시 단순한 응원 도구가 아니다. 어떤 상징은 보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가해의 역사를 가진 쪽이 “그저 응원일 뿐”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피해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무거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7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일본 구단 팬들의 욱일기 사용이 문제가 돼 제재가 이뤄졌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는 경기장에 욱일기를 들고 들어가려던 일본 팬들이 FIFA 안전요원에
윤석인 신임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이 22일 취임해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윤석인 신임 센터장이 취임식을 갖고 자원봉사 정책과 현장을 잇는 플랫폼 역할 강화에 나선다고 23일 밝혔다. 윤 신임 센터장은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한 언론인 출신이다. 이후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소장과 이사장을 지냈다. 성남이로운재단 부이사장 등을 맡아 시민참여와 지역사회 혁신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윤 센터장은 취임사를 통해 자원봉사의 본질을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공동체 회복력을 높이는 일로 규정했다.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자원봉사가 시민의 일상과 더 가깝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센터의 정책·현장·시민참여 연계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2026년 유엔이 지정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IVY 2026)’도 주요 계기로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이를 대한민국 자원봉사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국내외에 확산하는 전환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앞으로 전국 자원봉사센터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기업 등 협력기관을 연결하는 자원봉사 플랫폼 기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책 개발과 연구,
JTBC와 중앙그룹 핵심 계열사의 연쇄 기업회생절차 신청은 방송·콘텐츠 업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드라마와 예능 제작비를 선투입한 중소 외주 제작사는 가장 복잡한 법적 지위에 놓인다. 이들은 JTBC로부터 제작비를 받지 못한 채권자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OTT 플랫폼에 대한 납품 의무를 부담하는 채무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회생채권을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약의 이행 여부, 납품 책임, 위약금 부담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 미지급 제작비 채권 — 핵심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제작 도급계약이 회생절차개시 당시 JTBC와 제작사 양쪽 모두 이행을 완료하지 않은 상태라면, 이는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이 적용되는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쌍무계약이란 “양쪽 당사자가 서로 대가관계에 있는 채무를 부담하는 계약으로, 양쪽 당사자의 채무 사이에 성립·이행·존속상 견련성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담보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드라마 제작 도급계약은 전형적인 쌍무계약에 해당한다. 이 경우 관리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첫째, 이행 선택이다. 관리인이 계약 이행을 선택하면 제작사의 잔여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금언이 있다.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말인데 과거 이와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벌레의 입장에서 저 문장을 다시 써보면 어떻게 될까?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힌다.’가 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과 판단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연약한 초식동물 가젤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평화로운 풍경이나 막상 가젤의 눈과 귀는 매우 긴장된 상태다. 저편 숲에 숨어있을 사자가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숲속에 몸을 웅크린 사자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동안 사냥을 위해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체력은 한정돼있으므로 사냥에 실패하면 그만큼 굶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사자가 표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가젤도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사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꼴등으로 달리는 가젤보다는 빨리 뛰어야 배를 채워 살 수 있다. 가젤 입장에서는 가장 빠르게 뛰어오는 사자보다 더 빠르게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