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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만도 하청노동자 사망 12일째…민주노총 “휴가철 기습 가동 멈춰라”

MCT 12호기 문 열려도 멈추지 않는 구형 설비…노조 “인터락 없는 설비 148대”
원청 관리자 지시로 원청 작업자가 가동 버튼…유족, 재발방지 대책 요구하며 장례 미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HL만도 평택공장에서 하청노동자 김승모 씨가 숨진 뒤에도 휴가 기간을 이용한 생산라인 재가동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중단을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故 김승모 님을 추모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HL만도는 휴가철 기습 가동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즉각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이 발표된 이날은 사고 발생 12일째였다.

 

김승모 씨는 지난달 22일 낮 12시 48분께 경기 평택시 포승읍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머시닝센터(MCT) 설비를 점검하다 탱크 벽과 움직이는 설비 사이에 끼였다.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문 열려도 멈추지 않은 MCT 12호기

 

금속노조 사고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MCT 12호기는 2005년 출시된 구형 HP400 모델이다. 가동 중에도 문을 수동으로 열 수 있었고, 문이 열리면 설비를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안전장치인 ‘인터락’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노후 설비는 가공 과정에서 발생한 금속 칩이 자동으로 배출되지 않아 작업자가 설비 후면 문으로 직접 들어가 제거해야 했다. 사고 당시 김 씨도 설비 내부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는 김 씨가 설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원청 작업자가 현장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가동 버튼을 누르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작업 당시 현장감독과 안전관리자가 입회하지 않았고, 작업 전 안전회의인 TBM도 실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비 가동 중지를 알리는 안전표시와 작업구역 접근 통제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평택공장에 설치된 MCT 설비 가운데 인터락이 없는 장비가 148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조 “휴가 기간 생산 재개 시도”

 

민주노총은 사고 이후에도 회사가 재발방지 대책보다 생산 재개를 우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명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달 28일 외부 생산 대체 물량을 반입해 작업 재개를 시도했다. 다음 날 새벽에는 관리자들이 생산라인에 투입돼 일부 설비를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은 휴가 기간인 이달 1일부터 9일 사이 생산라인을 가동하기 위한 특근 모집도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휴가철마다 전원을 차단하고 설비를 점검했던 기존 관례와도 맞지 않는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달 3일 오전에는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인터락이 설치되지 않은 MCT 설비에 안전장치를 달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외주업체와 체결한 도급계약서와 작업자 안전교육 이행 자료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가 제시되지 않으면서 이날 작업은 인터락 1개가량을 설치한 뒤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노조가 위험작업 중단과 노사 합동점검을 통한 인터락 설치 등 6대 요구를 제시했지만, 회사가 실무회의에서 논의한 내용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시 작업지시 놓고 불법파견 의혹도

 

김 씨가 소속됐던 하청업체 피아로딕스의 업무 형태를 둘러싼 문제도 제기됐다.

 

금속노조 자체 조사에서는 피아로딕스 노동자들이 정식 도급계약 없이 공장에 상주하며 원청 관리자로부터 수시로 작업지시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작업을 마치면 원청 관리자에게 먼저 결과를 보고한 뒤 소속 업체에 내용을 알렸고, 작업 대금은 별도의 계약 절차 없이 작업량에 따라 사후 정산됐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는 이 같은 업무 방식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원청의 실질적인 지휘·감독 아래 하청노동자가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도급계약 내용과 실제 작업지시 체계에 대한 관계기관의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10년 전에도 유사 사고…왜 안전장치 미뤘나?”

 

민주노총은 2016년에도 같은 공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해 인터락 미설치 설비의 위험성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당시 지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됐다는 주장이다.

 

인터락이 설치된 일부 설비에서도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임의로 해제한 채 작업했다는 현장 증언도 나왔다.

 

이시열 금속노조 만도지부 평택지회장은 "사고 당일 고용노동부 현장조사를 앞두고 인터락을 무력화하는 데 사용된 케이블타이를 모두 풀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조는 회사가 인터락 132대를 사흘 안에 설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점을 들어, 그동안 안전장치 설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족, 빈소 마련했지만 발인 미뤄

 

유족은 평택 안중장례문화센터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지난달 31일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다. 다만 유족은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발인을 미루고 있다.

 

유족은 민주노총을 통해 “우리 아들뿐 아니라 누구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며 “20대, 30대 청년들이 이렇게 죽도록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인터락과 전원 차단 상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비롯해 적정인원 산정, 정규직 채용, 중대재해 비상연락 체계 구축, 노사 합동조사 표준화, 트라우마 치료 지원, 외주작업 안전관리 수칙 마련, 중간관리자의 생산라인 작업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장에서 2013년 이후 신규 채용이 사실상 중단돼 노동자 평균 연령이 53.2세까지 높아졌고, 인력 부족 속에서 생산 기한 단축 부담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작업중지 확대…경찰도 책임 여부 수사

 

HL만도는 사고 당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알렸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은 사고 설비와 관련 공정에 부분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최초 대상은 사고가 발생한 ABS 가공라인 MCT 1호기부터 15호기까지였으며, 노조는 이후 작업중지 대상 설비가 38대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설비 가동 버튼을 누른 작업자와 현장 관리자를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원청과 협력업체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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