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있어 최대의 복지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것은 ‘일자리’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한 인간이 사회적 주체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가장 완벽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니즈를 반영하듯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일자리가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단시간 복지 일자리부터 전일제, 체육 및 문화예술 일자리, 그리고 중증장애인을 위한 권리중심형 일자리와 재택근무 모니터링 일자리까지 겉보기에는 제법 다채로운 진용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장애인들의 삶은 일자리와 함께 윤택해 지고 풍성해 졌을까?
그러나 화려한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면 차마 양질이라 부르기 민망한 차가운 현실이 드러난다. 현재 양산되는 장애인 일자리의 절대다수는 단시간 근로이거나 반일제 근무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 장애 당사자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거친 기업 환경 속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당당히 꿰찼던 ‘8시간 전일제 근무’의 양질의 일자리들이 오히려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단시간 일자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 지원 확대를 빌미로 한 가정을 지탱하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제대로 된 전일제 일자리마저 사장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비극은 정부의 지독하게 잘못된 정책 설계에서 기인한다. 고용의 ‘질’이 아닌 오직 ‘숫자’와 ‘실적’으로만 정책의 성과를 과시하려는 관료주의적 난맥상이 빚어낸 참사인 것이다.
현재 정부는 중증장애인 1명 고용 시 2명을 고용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2배수 정책’과 단시간 근로자 역시 고용 숫자에 그대로 반영하는 편의주의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장애인을 8시간 전일제로 직접 고용해 온전한 급여와 정년을 보장할 유인이 사라진 셈이다. 결국 생계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경증·단련 장애인들의 일자리가 도리어 줄어드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말았다.
결국 지금의 정책 기조는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돌봄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가두어 둔 채 생색내기용 ‘프린트물’을 던져주는 구태의연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의 고용 정책을 짤 때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 임금 수준을 그토록 치열하게 따지면서, 왜 장애인 일자리 정책은 ‘일단 취업자 숫자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일함으로 일관하는가.
이는 장애 당사자들을 향한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자 모욕이다. 불쌍하니까 적당히 몇 시간 일하게 하고 푼돈이나 쥐여주면 된다는 식의 시혜적 관점은 이제 완전히 파기되어야 한다.
증증장애인들을 위한 권리형 일자리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에 필자는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강력히 주문한다. 이제는 중증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권리 옹호를 위한 ‘권리중심형 복지 일자리’와, 온전하게 생계를 책임지며 조직 내에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승진도 하고 정년도 보장받는 ‘양질의 전일제 일자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투트랙(Two-Track) 정책’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8시간 직접 고용을 통해 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하는 기업들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단시간 고용으로 의무 고용률 숫자만 채우려는 고용의 형태에 따른 지원 체계를 촘촘하게 재설계해야 한다.
장애인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마땅한 동등한 시민이다. 시혜성 던져주기식 일자리로 장애인의 삶을 난도질하는 정책적 퇴행을 멈춰라. 장애 당사자가 당당한 노동자로서, 한 사회의 주체적인 시민으로서 비장애인과 섞여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전면 재고와 혁신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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