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향교(전교 정종영)는 8월 3일 오전 10시 유림회관(당호 집인관)에서 정종영 전교와 유림,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보조금지원사업인 충효교실 특강 제14강을 개강했다.
연일 이어지는 극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충효교실은 다양한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유림과 지역민들에게 한국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유교문화의 우수성을 전하고, 지식습득과 인성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정종영 전교를 비롯한 유림들이 솔선수범하여 적극 참여함으로써 향교의 위상 강화와 지역문화의 중심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이날 특강은 오임숙 박사(동아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를 초빙해 ‘조선의 지석(誌石) 제1강 지석이란?’ 주제의 강연이 진행됐다.
오 박사는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사후에 생전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남기는 수단의 하나로 지석(誌石)을 들 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시작했다.
“지석의 명칭은 지석(誌石), 묘지(墓誌), 묘지석(墓誌石), 묘지명(墓誌銘), 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 묘명(墓銘), 묘기(墓記), 광명(壙銘), 천부지(遷附誌) 등 매우 다양한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지석(誌石)과 묘지(墓誌)이다”라고 해설한 후에는 “지석을 매납(埋納)하는 이유는 묘(墓)를 장기간 보존하고 피장자를 후세까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세월이 흘러 피장자가 잊혀졌더라도 지석을 통해 그 행적(行蹟)을 어느 정도 밝힐 수 있고, 비석을 세울 형편이 못 되거나 비석만으로는 불안할 경우도 지석을 매납하였다”라고 설명했다.
지석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에서 역대 황제릉이 지나친 노동력과 물자의 낭비를 초래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궁핍을 이유로 석실(石室), 석수(石獸), 석비(碑石) 등의 석물을 금지하면서부터 능묘 앞에 세우던 비석 대신 저석(底石)으로 된 판석에 묘지명을 새겨 묻게 된 것이다”라고 이어갔고, 우리나라에서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시대부터 지석이 등장하였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묘지(墓誌)로 고구려는 황해도 안악군에 위치한 안악3호분 널방 전실 서측 벽에 그려진 인물 위에 먹으로 쓴 70여 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며 백제와 통일신라시대 등의 사례도 언급했다.
지석의 기록방식과 관련하여 “지석 구성에 있어 지석의 성격과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조선시대는 고려와 달리 표제문(表題文), 지문(誌文), 명문(銘文) 구성 체계를 모두 갖춘 지석은 드물게 나타난다. 기록방식에 있어 구성 체계를 굳이 나눈다면 <표제문>형, <표제문+지문>형, <표제문+지문+명문>형, <표제문+지문+묘도>형, <표제문+좌향>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며 보다 전문적인 내용까지 설명을 이어갔다.
이날의 강의에 이어 8월 6일에 다시 오임숙 박사를 초빙해 ‘조선의 지석 2강-다양한 형태와 재질’ 주제의 충효교실 특강 제15회차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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