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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의 국회 나들이…‘배려 문자’가 드러낸 국회의 반칙 [기자수첩]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 ‘배려 문자’ 논란…질문 준비 명분으로 사전 접촉
축구협회 불공정 추궁하던 청문회에 사적 인연 개입…국회도 신뢰의 심판대 올라

 

13년 5개월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이끌다 지난 6일 물러난 정몽규 전 회장이 30일 다시 여의도를 찾았다. 이번에 그가 앉은 자리는 축구협회장석이 아니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의 증인석이었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축구협회의 운영 난맥과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 북중미 월드컵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정 전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고개를 숙였다. 재임 기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일련의 논란과 북중미 월드컵의 미흡한 결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축구협회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는 말도 뒤따랐다.

 

사과의 끝에는 작별 인사가 놓였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만큼 앞으로는 기업인으로서 경영에 집중하며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축구협회를 이끌며 누적된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 설명하기보다, 이제는 기업인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책임을 말하면서도 책임을 져야 할 자리는 이미 떠났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질의가 시작되자 사과의 실질은 더욱 흐릿해졌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더라도 청문회가 열렸겠느냐?"고 묻자, 정 전 회장은 "16강에 올랐다면 청문회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청문회의 이유를 축구협회의 구조적 문제보다 경기 성적에서 찾는 듯한 답변이었다.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했다면 감독 선임 절차와 협회 운영의 불투명성, 오랜 기간 누적된 불신도 덮였을 것이라는 말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묻는 것은 패배한 경기 하나의 책임만이 아니었다. 축구협회가 왜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졌는지, 회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구조를 누가 견제했는지를 묻고 있었다. 성적이 좋으면 과정의 하자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 정 전 회장이 고개를 숙인 이유와 국민이 분노한 이유는 처음부터 달랐던 셈이다.

 

50억 원 기부 공약을 둘러싼 문답은 더욱 선명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 전 회장이 회장 선거 당시 천안 축구종합센터 완성을 위해 협회에 5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꺼냈다.

 

“50억 원을 기부했습니까?”

 

정 전 회장은 곧바로 답하지 않고 30억 원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노 의원이 기부했는지만 답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그제야 “못 했습니다”라고 인정했다.

 

회장직을 얻기 위해 내놓았던 약속과 퇴임 뒤의 결과 사이에 놓인 거리가 그 짧은 답변 안에 담겼다. 약속은 선거 때 필요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퇴임과 함께 정리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공적인 신뢰를 담보로 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려대 카르텔’ 의혹과 감독 선임 절차를 두고도 정 전 회장은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선임한 남자 대표팀 감독 가운데 고려대 출신은 한 명뿐이라며 카르텔 의혹을 부인했고, 감독 선임 절차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도 밝혔다.

 

사과는 총론에 머물렀고,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부인과 해명이 앞섰다. 고개는 숙였지만 책임의 범위는 좀처럼 넓어지지 않았다. 결과가 나빴던 점은 사과하면서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과 자신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였다.

 

청문회의 성격을 뒤흔든 장면은 오후에 공개된 문자메시지였다. 청문위원인 윤용근 국민의힘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정 전 회장에게 “어제 정 선배님한테 연락받았습니다. 더 잘 배려해 드려야 하는데 송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정 전 회장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 말고 다른 자리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축구협회의 반칙을 바로잡겠다며 마련한 청문회에서 청문위원과 증인 사이에 ‘배려’라는 이름의 패스가 오간 것이다. 증인을 추궁해야 할 의원은 충분히 배려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고, 증인은 국회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인사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 앞에 공개된 질의보다 보이지 않는 인연이 먼저 작동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윤 의원은 개인적 친분에서 나온 도의적인 표현일 뿐이며, 준비한 질의를 그대로 했고 어떠한 대가도 오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역할은 별개라는 취지의 설명도 내놓았다.

 

공사(公私)의 구분은 당사자가 말로 선언한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사적 인연이 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거리를 두고, 오해를 부를 행동을 삼가며, 질문과 판단의 독립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증명된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증인에게 더 배려하지 못해 송구하다는 문자를 보낸 행위는 청문위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긴장감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정 전 회장의 해명도 논란을 키웠다. 그는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별한 부탁이나 편의를 요청하지는 않았으며, 오해를 살 수 있는 연락은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증인이 공개된 현안과 자료를 검토하고 예상 질문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맥을 통해 청문위원에게 접근하거나 질문의 방향을 알아보려 했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축구로 비유하면 상대 전력을 분석해 경기를 준비하는 것과 심판에게 판정의 방향을 미리 묻는 것은 같은 준비가 아니다.

 

문자에 등장한 ‘정 선배’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노 의원이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지칭하는 것인지 물었지만, 정 전 회장은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청문회를 앞두고 누가 현직 국회의원에게 연락했고, 어떤 취지의 부탁을 전달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 위법한 로비나 대가 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법적 책임과 별개로 청문회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든 정치적·도의적 책임까지 사적인 친분이라는 말로 덮을 수는 없다. 국민에게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받는 자리에 섰다면 오해를 피하는 것 또한 공직자의 의무다.

 

청문회는 축구협회의 불공정과 불투명성을 심판하기 위해 열렸다. 정작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이 증인에게 배려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증인이 인맥을 통해 예상 질문을 알아보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칙을 바로잡겠다던 심판이 경기장 안으로 사적 인연을 끌어들인 셈이다.

 

유가(儒家)에서는 공과 사를 분별하는 일을 공직자의 근본으로 여겼다. 공적인 지위는 사적인 인연을 챙기라고 맡긴 자리가 아니라, 사사로운 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라고 맡긴 자리이기 때문이다. 염치(廉恥) 역시 잘못이 드러난 뒤 형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스스로 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 전 회장은 여러 차례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죄송함은 주로 월드컵 성적이라는 결과를 향했고, 감독 선임과 협회 운영, 기부 공약 미이행 같은 과정의 문제에는 해명과 부인이 뒤따랐다. 윤 의원도 문자가 질의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청문위원이 증인에게 배려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왜 부적절한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회장님의 국회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정 전 회장은 다시 기업인의 자리로 돌아갔고, 윤 의원은 청문위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남긴 것은 지켜지지 않은 50억 원의 약속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정 선배’, 그리고 “더 잘 배려해 드려야 하는데 송구하다”는 문자였다.

 

축구협회의 반칙을 바로잡고자 시작한 청문회에 국회의 반칙이 끼어들었다. 이날 국민이 확인한 것은 한국 축구의 신뢰가 무너진 이유만이 아니었다. 그 신뢰를 다시 세우겠다던 국회마저 왜 선뜻 믿기 어려운지를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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