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현은 “이로움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라(見利思義)”고 가르쳤다. 이익과 의로움의 경계를 분별하는 의리지변(義利之辨)은 유가가 수천 년 동안 강조해 온 오래된 경계다. 이익 자체를 죄로 여긴 것이 아니라, 이익을 좇더라도 마땅함을 잊지 말고 그 과정에서 이웃과 공동체의 삶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홈플러스 사태로 대주주 책임론에 직면한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경영권까지 확보하려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 오래된 가르침을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모펀드의 투자와 경영권 행사가 노동자의 고용과 협력업체의 존립, 지역경제의 안정, 국가 핵심소재 공급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단순한 사적 거래로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사모펀드가 국가기간산업과 공공·민생산업의 경영권을 제한 없이 인수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모펀드가 국가기간산업과 공공산업, 민생산업의 경영권을 침탈하면 결국 홈플러스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며 규제 장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상황에서 MBK가 미국에서 고려아연 관련 행사를 개최한 사실도 문제 삼았다.
강 의원은 “홈플러스가 이런 상황인데도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며 “국가기간산업이나 민생산업을 사모펀드가 계속 약탈하도록 방치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표현의 수위는 높지만 홈플러스 사태가 노동자와 입점업체, 납품업체, 지역사회에 남긴 불안을 고려하면 그 문제의식까지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PEF로부터 기간산업의 공공성을 보호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답했다. 대상 산업의 범위와 규제 방식, 입법 형식을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규제 방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간산업의 공공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입법적 대안을 살펴보겠다고 밝힌 점은 가볍지 않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러한 답변이 ‘검토’라는 말에 머물 것인지, 국가기간산업의 경영권을 둘러싼 실질적인 심사제도로 이어질 것인지다.
홈플러스 존폐 갈림길에서 열린 미국 리셉션
이번 논란에서 우선 살펴야 할 대목은 MBK와 영풍의 미국 현지 행보다.
MBK와 영풍은 이달 9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 지원 리셉션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윤종하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양사 관계자, 현지 정·재계 인사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MBK·영풍 측은 행사에서 자신들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 소개하고 프로젝트의 주요 소통 주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려아연 경영진과 별도의 협의 없이 행사가 진행됐다는 고려아연 측 설명도 나왔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미국 내 비철금속 생산 기반과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며 추진해 온 사업이다. MBK·영풍은 사업의 전략적 가치보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 방식과 의사결정 절차를 문제 삼으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국내에서는 사업의 자금 조달 방식에 법적 이의를 제기한 MBK·영풍이 미국에서는 프로젝트의 지원 주체이자 주요 소통 창구를 자처한 것이다. 법률적 다툼의 대상이 사업 자체가 아니라 유상증자 방식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지 행사에서 고려아연의 사업을 자신들의 성과나 권한처럼 소개했다면 그 근거와 경위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
행사 시점도 논란을 키웠다. 당시 홈플러스는 최소 운영자금 2000억 원을 확보하지 못해 전국 점포 영업을 임시 중단했고, 법원은 회생계획의 수행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상태였다.
이후 메리츠금융그룹이 2000억 원의 긴급운영자금 대출을 의결하고 MBK와 김병주 MBK 회장이 연대보증을 제공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서울회생법원은 21일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간을 오는 9월 4일까지 연장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홈플러스의 회생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관계인집회에서 회생계획안에 대한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영업 정상화와 유통 경쟁력 회복, 협력업체 및 소비자의 신뢰 회복이라는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연장은 회생을 위한 마지막 기회에 가깝다.
따라서 현재 MBK에 물어야 할 것은 홈플러스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긴급 유동성 지원을 넘어 홈플러스가 독립적인 유통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어떤 중장기 투자와 경영 정상화 방안을 내놓을 것인지가 핵심이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도 앞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MBK가 홈플러스 사태의 책임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보다 해외에서 다른 기업의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여론전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기 자금 지원을 넘어 유통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할 근본적인 회생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MBK “서로 다른 투자”…이번 취재 질의에는 답변 없어
MBK는 그동안 홈플러스 사태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연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미국 제련소 사업의 전략적 가치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기존 주주를 배제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과 의사결정 절차를 문제 삼았다는 설명이다.
홈플러스 투자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투자 주체와 성격이 다른 별개의 사안이며,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의 목적도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는 것이 MBK가 종전에 밝혀온 입장이다. 고려아연의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도 없다고 주장해 왔다.
본지는 MBK 측에 미국 테네시주 행사 개최 경위와 ‘최대주주 그룹’ 및 ‘주요 소통 창구’라는 표현의 근거, 국내에서 미국 제련소 관련 유상증자에 반대하면서 현지에서는 사업 지원을 표방한 이유를 물었다.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활동을 이어가는 데 대한 입장과 두 기업을 동시에 책임질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의했으나 기사 마감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홈플러스와 고려아연이 법적으로 서로 다른 투자 사안이라는 MBK의 기존 설명은 존중돼야 한다. 두 사안을 곧바로 하나의 법적 책임으로 묶어 판단해서도 안 된다.
법률적 구분이 사회적 책임까지 완전히 분리해 주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 회생을 둘러싼 대주주 책임론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국가기간산업의 경영 주체를 자처하는 것이 적절한지, 두 기업을 동시에 책임질 역량과 장기적인 산업 비전을 갖추고 있는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국민이 묻는 것은 투자 주체의 법적 구분만이 아니다.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의 삶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주주가 어떤 책임을 먼저 감당했는지, 새로운 경영권을 요구하기에 앞서 기존 투자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사회적 신뢰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사모펀드의 시간과 기간산업의 시간
사모펀드의 존재 자체를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사모펀드는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부실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드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는 자본시장의 논리가 있고, 기업의 경영권도 원칙적으로 주주와 시장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다.
문제는 일정 기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자본의 시간과 수십 년에 걸쳐 기술과 고용, 협력업체 생태계와 지역경제를 축적해 온 국가기간산업의 시간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장기 투자와 기술 혁신이 아니라 과도한 차입과 자산매각, 배당 확대, 인력 감축에 기댄다면 그 부담은 결국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투자자는 수익을 얻고 손실과 구조조정의 비용은 공동체가 떠안는 구조를 공정한 시장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모든 사모펀드 투자를 같은 방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이 모두 실패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 생활과 국가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경영권이 단기 투자 회수 논리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는 홈플러스 사태를 거치며 더 이상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게 됐다.
해외 사례도 같은 경고를 남긴다. 미국에서는 사모펀드 플래티넘에쿼티가 소유했던 교정시설 통신업체 아벤티브테크놀로지스가 수감자와 가족에게 부과한 높은 통신요금과 과중한 부채 문제로 비판받았다. 아벤티브는 결국 채무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비법정 구조조정을 거쳐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영국에서는 맥쿼리가 이끈 컨소시엄이 수도 공급업체 템즈워터를 보유한 기간에 부채와 배당이 크게 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템즈워터가 막대한 부채와 수질오염, 시설투자 부족 문제에 직면하면서 필수 공공서비스를 투자 회수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보여준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맥쿼리 측은 보유 기간 상당한 투자를 했고 경영 상태도 개선했다며 현재의 위기를 당시 경영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해 왔다.
해외 제도가 사모펀드의 진입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일부 주는 비의료 자본이 의료인의 임상 판단을 사실상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의료기관 거래에 사전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은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 인수를 별도로 심사하며, 호주도 외국인의 국가안보 관련 투자를 심사하고 필요할 경우 거래를 제한할 수 있다.
유럽연합 역시 외국 보조금의 지원을 받은 기업결합이 역내 시장을 왜곡하는지 심사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자본의 이름만 보고 진입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인수 대상 산업의 공공성과 국가안보적 중요성, 투자자의 실질 지배구조와 거래 이후의 영향을 살피는 데 가깝다.
규제는 ‘PEF’ 이름보다 인수 이후를 봐야
국가기간산업의 공공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성급한 규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잘못 설계하면 해외 기반의 혼합형 자본은 규제를 빠져나가고 국내에서 건전하게 성장해야 할 기관전용 사모펀드만 과도한 부담을 질 수 있다.
규제 대상은 ‘사모펀드’라는 이름이나 자본의 국적만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산업을 인수하려는지, 인수자금 가운데 차입금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인수 이후 배당과 자산매각 계획은 무엇인지, 핵심기술과 고용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중장기 투자를 지속할 재무 능력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실질적인 지배주체와 최종 자금 출처를 확인할 장치도 필요하다. 해외에 운용사나 투자기구를 두고 국내외 자금을 섞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한다면 국내 PEF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국가기간산업과 공공·민생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투자자에게는 일반 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인수 전에는 재무구조와 산업 운영 역량을 심사하고, 인수 이후에는 고용과 투자, 기술 보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감독해야 한다. 기업의 존립과 공공성을 훼손했을 때 책임을 물을 사후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고려아연은 단순한 비철금속 기업이 아니다. 아연과 연, 은을 비롯한 핵심 소재를 생산하며 국가 공급망과 첨단산업, 방위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간산업이다. 경영권의 향배를 지분율과 주가, 인수 가격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경제와 국가 산업전략에 미칠 파장이 크다.
공자는 “의롭지 않게 얻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고 했다. 공동체의 희생 위에 쌓은 수익은 오래 지속될 수도, 정당한 부로 존중받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자본에 마땅함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시장이 오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과 절제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정상적인 투자까지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국가기간산업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는 정교한 인수 심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 기준은 사모펀드라는 이름이 아니라 차입 구조와 산업 운영 역량, 자산매각 계획, 고용 유지, 핵심기술 보호, 중장기 투자 의지가 돼야 한다.
홈플러스의 회생을 완수할 책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기간산업의 경영권을 요구하는 자본이라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만큼, 자신이 그 기업과 공동체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도 증명해야 한다.
이익을 보거든 먼저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견리사의의 가르침은 오늘의 자본에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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