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선생의 제자로서 1773년(영조 4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한 후 19년 간 유생으로 생활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式年文科) 전시(殿試)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처음 벼슬에 나아갔던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 선생은 시문집인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반중잡영(泮中雜詠)」 220수(首)를 남겨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과 그 속에서 생활하던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고도 생동감 있게 표현했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꼼꼼하게 작성된 시 하나하나가 모두 볼만 하지만 특히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한 성묘(聖廟, 문묘)에 대한 정돈 및 청소의 내용을 담은 <성묘수소(聖廟修掃)>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유림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되돌아보게 한다.
수소매당오일조(修掃每當五日朝) : 닷새 아침마다 정리하고 깨끗이 치우기를
전중원급계사초(殿中爰及啓祠迢) : 전각 안과 계성사 멀리까지 이르렀네
장의불래반수체(掌議不來班首替) : 장의가 오지 않으면 반수로 바꾸고
홍의수복주상요(紅衣守僕走相邀) : 붉은 옷 입은 수복이 달려가 서로 맞이하네
닷새마다 청소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같이 적혀 있는 주석(注釋)에 ‘닷새, 열흘마다 정리하고 깨끗이 치우는 예를 행한다(每於五日十日 行修掃之禮)’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음력으로 매달 5일과 10일에는 아침부터 대성전을 비롯한 전각 등의 주요 건물을 청소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던 것같다.
‘장의가 없으면 반수가 대신 행하여 수복을 이끌고 전각 안과 계성사를 봉심한다(無掌議則班首代行 率守僕奉審殿內及啓聖祠)’고 되어 있는 부분은 원래는 장의들이 일을 주관해야 하는데 사정이나 상황상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학생회장 또는 수석장의에 해당하는 반수가 중심이 되어 시행했음을 말한다.
유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은 물론이고, 사회 운영의 기본 원리로 작용하던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양반이고 명문가라고 하더라도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도 공부만 잘해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초하루와 보름의 분향(焚香), 봄과 가을의 석전제(釋奠祭)를 비롯한 각종 의례에 정성을 다해야 함은 물론 평소의 생활 방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서 시행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성균관은 물론이고, 지방의 향교도 보통은 춘기석전과 추기석전을 앞두고 각각 한 차례 정도만 열심히 정돈 및 청소를 하고, 어쩌다가 운이 좋으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준 문화재지킴이 도우미들이 잔디 깎기를 비롯한 환경정비를 진행하다 보니 성현들이 모셔진 대성전의 정위(正位)와 배위(配位), 종향위(從享位) 등에 먼지가 짙게 덮여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울 정도가 되곤 한다.
말로는 교궁 수호(校宮守護)를 앵무새처럼 외치지만 본인의 집안 모습이 그러했으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귀찮다’ ‘힘들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다”
이런 말들로 구실을 찾아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 「고과조(考課條)」에 실려있는 내용으로, 조선시대 수령이 지방을 통치할 때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사항 중 세 번째로 언급된 ‘학교흥(學校興)’에서 중요한 지역마다 존재하던 학교인 향교(鄕校)를 흥하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막중했음을 알 수 있듯이 향교의 최고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교(典校)는 물론 향교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장의(掌議)도 임명장을 주변에 자랑만 하지 말고, 열정과 성의를 바쳐 유교 부흥과 향교 발전에 매진했으면 한다.
모든 의례의 시작은 본인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물론 모셔야 할 대상들이 계신 곳을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가꾸고, 정리·정돈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공부자를 비롯해 선현들이 배향되어 있는 대성전부터라도 공경심과 정성으로 잘 보존하여 당대의 국민들은 물론이고, 후대에도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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