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 지하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역 사거리에서 봉은사역까지 약 1km 구간을 잇는 영동대로 지하 복합개발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1조7000억 원. 연면적은 약 17만㎡로 잠실야구장 30개 크기에 이른다.
그 지하 가장 아래, GTX 열차가 지날 지하 5층 승강장 구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3공구 200m 구간의 콘크리트 기둥 80개에서 핵심 뼈대인 주철근이 설계보다 절반가량 적게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MBC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둥은 높이 8m, 가로·세로 약 1m 규모의 대형 사각기둥이다. 지름 29~32㎜ 굵기의 주철근이 두 개씩 한 묶음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실제 시공에서는 한 개씩만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기둥 한 개당 적게는 24개, 많게는 36개의 철근이 빠졌고, 전체 누락 규모는 약 2,570개로 전해졌다.
현대건설 측은 MBC에 “도면을 해석하는 데 오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체 조사 과정에서 시공 오류를 발견해 서울시에 자진 신고했고, 안전하고 검증된 방법으로 철저히 보강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다만 이 해명은 사안을 가볍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더 무겁게 만든다. 핵심 구조부에서, 그것도 80개 기둥 전체에 걸쳐, 2,500개가 넘는 주철근이 빠졌다면 이는 단순한 작업자 착오로만 보기 어렵다. 도면 검토, 현장 시공, 품질 확인, 감리 절차 중 어느 단계에서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례물시(非禮勿視)라 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뜻이지만,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는 보아야 할 것을 바로 보라는 경계로도 읽힌다. 시공사가 도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착각했다”는 말로 끝날 수 없다.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안이 현대건설 한 현장의 일탈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대표 건설사들은 수주 실적과 시공능력평가 순위로 자신들의 위상을 말해왔다. 그런데 시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신뢰는 광고 문구나 시공 순위가 아니라, 지하 깊은 곳에 들어간 철근 하나하나에서 결정된다.
최근 강남권 정비사업과 대형 건설 현장 곳곳에서 1군 건설사들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수주전 과열, 현장 통제 논란, 안전관리 부실 의혹이 반복될수록 시민의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회사들은 무엇으로 신뢰를 증명하고 있는가.”
책임은 시공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발주·관리 주체인 서울시의 대응도 따져봐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공 오류와 보강 방안을 보고받고도 국토교통부에 즉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류를 인지한 뒤 관계기관 보고와 시민 설명까지 시간이 흘렀다면, 이는 관리 행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공의 실패가 한 축이라면, 그 실패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한 관리의 실패가 또 다른 축이다. 시민은 6월 개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지하 5층 승강장 기둥의 철근 누락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형 인프라 사업에서 안전 정보는 행정 편의에 따라 늦춰도 되는 내부 문서가 아니다.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 공적 정보다.
한편 본지는 이번 철근 누락 사안과 관련해 현대건설 측에 도면 검토 과정, 현장 품질관리 절차, 자체 점검 시점, 서울시 보고 경위, 향후 보강 방식 등에 대한 입장을 질의했다. 이에 현대건설 측은 “자체조사 과정에서 시공 오류를 발견해 서울시에 자진 신고했으며, 안전하고 검증된 방법으로 철저히 보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대건설은 구체적인 도면 해석 오류 경위, 콘크리트 타설 전 검측 과정에서 누락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 서울시 보고 시점, 외부 검증 참여 여부 등에 대해서는 별도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보강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물론 보강은 해야 한다. 구조 검토도 필요하고, 외부 전문가 검증도 필요하다. 공기 지연보다 안전 확보가 먼저다.
그럼에도 핵심 구조부의 주철근이 설계보다 절반가량 빠진 채 시공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신뢰의 균열이다. 사후 보강으로 콘크리트의 빈틈은 메울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시민이 지하 5층 GTX 승강장을 지날 때 느낄 불안까지 쉽게 메울 수는 없다.
기업의 품격은 사고 이후의 보강 공법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를 만들지 않는 평소의 원칙이다. 도면 한 장을 끝까지 확인하는 태도, 현장 작업을 반복 점검하는 절차, 오류를 발견했을 때 즉시 알리는 정직이 곧 기업의 신뢰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 했다. 이익을 보거든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금 건설업계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공기(工期)나 더 공격적인 수주 전략이 아니다. 시민의 안전을 비용보다 앞에 두는 기본이다.
강남 한복판 지하 깊은 곳에서 빠진 것은 철근 2,570개만이 아니다. 그 자리에 함께 빠진 것은 시민이 대형 건설사와 공공 발주기관에 보내던 신뢰다. 현대건설과 서울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순 보강 계획 발표가 아니다. 어디서, 왜, 어떻게 이 오류가 반복됐는지 공개하고,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분명히 밝히는 일이다.
철근은 다시 넣을 수 있다. 신뢰는 그렇게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비례물시(非禮勿視)는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안연에게 인(仁)의 실천 방법을 설명하며 제시한 구절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뜻으로, 사사로운 욕심이나 편의가 아니라 마땅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사물을 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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