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관과 제집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헌관과 제집사가 서립해 있다.

초헌례를 봉행하고 있다.

아헌례를 봉행하고 있다.

종헌례를 봉행하고 있다.

초헌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남 합천 직수사(直樹祠)운영위원회(위원장 이상호 유교신문사 대표)는 4월19일 오전 10시 직수사에서 지역 유림과 유교학술원 회원 등 7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병오년 향례를 봉행했다.
직수사는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문하의 대표적 유학자인 창수(蒼樹) 정형규(鄭衡圭;1880-1957)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우이다.
이날 제향에는 이상호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문인, 후손 등이 참례했으며, 전폐례·초헌례·아헌례·종헌례·음복수조례·망예례 순으로 진행했다.
초헌관은 김종철 전 쌍백면장, 아헌관은 허규석 쌍백노인회 전 회장, 종헌관은 이방수 쌍백노인회 회장, 집례는 이흥섭 유교학술원 원장, 대축은 이탁희 성균관 전의, 좌집사는 김성재 유교학술원 이사, 우집사는 차광진 유교학술원 이사가 맡았다.
초헌관은 맡은 김종철 전 쌍백면장은 인사말에서 “창수 선생의 손자인 정화영 회장 생전에는 늘 향례에 참석했었는데 집안의 우환으로 참석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 오늘 영광스럽게도 초헌관을 맡으니 감회가 새롭다.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후손을 대표해 정영재 ㈜이노보솔류션 대표는 “오늘도 많은 분들을 모시고 향례를 봉행하게 돼 후손으로서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을 모시고 향례를 봉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운영위원장은 “올해에도 창수 선생을 기리는 향례에 빠짐없이 참석해 주신 제자, 사손, 유교학술원 임원,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올 한 해 건강하게 보내시고 내년에도 건강하게 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창수 정형규 선생은 스승인 송병선과 송병순이 일제에 항거해 음독자결하자 이후 간재 전우의 문하에서 종신토록 의귀한 경남 합천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그는 율곡(栗谷) 이이(李珥) -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 -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 - 간재 전우로 이어지는 기호학(畿湖學)의 주요한 학통을 계승한 인물로서 기호학파의 학문적 전통에 기초하여 간재의 학설을 실천적 측면에서 충실히 받아들였으며, 격변의 시기에 유학자적 삶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최근 고인이 된 최근덕 원임 성균관장이 대표적인 제자이고, 그는 평생을 함께한 정화영 의성실업 전 회장과 더불어 한 시기의 한국 유교를 이끌었다. 정화영 회장은 창수 선생의 손자로서 최근덕 원임 성균관장과 동문수학했다.
현재 강동숙 성균관 원임 부관장을 비롯해 3명에 제자가 생존해 있고, 최근덕 원임 성균관장의 제자인 이상호 유교신문사 대표가 학통을 잇고 있다.
창수 정형규 선생은 일찍이 “이른바 어세지술(御世之術)이란 헐뜯고 칭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있고 선악은 자기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자기가 어찌할 수 없고, 자기에게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착한 일을 하고서도 헐뜯음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악한 일을 하고서도 칭찬을 듣는데 이는 시세의 변고이다. 그러나 리(理)를 즐겨 따른다면 무고와 헐뜯음을 당하더라도 주공이나 공자처럼 이름이 후세에 설 것이며, 한갓 이익만을 탐한다면 권세와 부귀를 누리더라도 진회나 한탁주처럼 악취가 만년을 풍길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헐뜯음이 나의 의리와 견줄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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